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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읽으면서 비교해본 십자군 전쟁사 - 3 권



 대미를 장식하는 3권은 가장 두꺼운 분량을 자랑하며 사자심왕 리처드 부터 아크레 (아코) 함락 이후 기사단의 이후 이야기까지 정리되어 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괜찮다는 생각이지만 역시 몇군데 오류가 보입니다. 그리고 저와는 확실히 시각의 차이가 있는데 뭐 역사의 사실은 그대로라도 평가는 다를 수 있겠죠 



1. 사자심왕 리처드 


 일단 3권에서 시오노 나나미 서술의 특징은 사자심왕 리처드에 대해서 꽤 우호적으로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테면 3권 76 페이지에는 존엄왕 필립 (필리프) 에 대해서는 자기 중심적 인물이라고 쓰는 반면 리처드에 대해서는 전략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고 장기적인 시야에서 보면 아군에 득을 가져오는 일이 많은 인물로 적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반대라고 보는데 왜냐면 리처드와 필리프가 죽었을 무렵의 프랑스와 영국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하면 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필리프는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왕국을 반석위에 올려놓았고, 결국 죽고 나서 존엄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던 유능한 군주였습니다. 반면 리처드는 2차례나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장악한 후 십자군 원정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것도 모자라 자신의 몸값을 갚기 위해 무거운 세금을 매겼으므로 사실 헨리 2세로 부터 물려받은 강력한 왕국이 쇠퇴하는 계기가 되게 됩니다. 


 또 후계 문제에 있어서도 동생 존이 무능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결국 존이 왕위를 계승하게 그냥 방치하고 본인은 후계자를 만드는데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프랑스내 영국의 힘은 감소하게 됩니다. 반면 필리프 2세를 이은 루이 8 세는 단명했지만 유능한 군주였습니다. 


 리처드 1세는 3차 십자군에서도 아크레 점령 후 사소한 문제로 레오폴드 5 세와 사이가 틀어져 나중에 보복을 당하게 되는 것은 물론 주요 군주 가운데 사실상 혼자서 3차 십자군을 이끌게 되는데 이 역시 작은 것을 양보해서 큰 것을 취하려는 대국적인 사고가 부족한 데서 나오는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본래 오래 있을 생각이 희박했던 필리프 2세는 그렇다 쳐도 레오폴트 5세는 잘 다독여서 가능한 오래 끌고 가는게 여러 모로 유리했을 텐데 말이죠.       


 또 리처드가 반란을 일으킨 경위에 대해서도 설명이 다소 이상한데 일단 1173년에서 1174 년 반란에는 차남 헨리 뿐 아니라 삼남 리처드와 사남 제프리까지 동참했다는 것은 이미 이전 십자군 전쟁사에서 설명한 대로 입니다. 여기에 다시 1183 년 왕명을 거역한 죄로 다시 내전이 발생하죠. 사실 1189 년 반란은 결코 리처드가 처음 아버지에게 반기를 든게 아니었습니다. ( 이 부분은 이전 포스트  http://blog.naver.com/jjy0501/100122137359   http://blog.naver.com/jjy0501/100122191082 참조 )   


 이미 십자군 전쟁사에서 리처드 1세의 집권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 했듯이 리처드는 통치자로써는 낙제점이었고 더 나아가 사소한 욕심으로 대사를 그르치는 경향이 적지 않았습니다. 뭐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게 마련이니까요. 


 2. 키프로스 왕국의 탄생


 3 권  165 페이지에는 리처드 1세가 뤼지냥의 기에게 자신이 정복한 키프로스 왕국을 다스리게 했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돈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리처드 1세는 실제로는 성전 기사단에게 이를 팔아버렸고 이후 뤼지냥의 기가 이 섬을 다시 사들였습니다. 리처드 1세의 평소 행동을 봤을 때 힘들여 얻은 땅을 거져 양보한다는 건 생각하기 힘든 일이라고 할 수 있죠. 이부분은 제가 쓴 십자군 전쟁사에도 나오지만 영문판 위키 백과도 참조할 수 있습니다. 





3. 프리드리히 2세와 교황


 아마도 십자군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가 가장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3권에서는 바로 프리드리히 2세와 교황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일단 인노켄티우스 3세가 왜 강력한 교황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전 포스트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그에 대립할 수 있는 강력한 황제가 - 즉 하인리히 6세 - 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군 이야기에는 마치 인노켄티우스 3세가 프리드리히 2세의 든든한 후원자인 것 처럼 설명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노켄티우스 3세는 어떻게든 독일에서 남 이탈리아에 이르는 단일 제국이 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했으며 - 그렇게 되면 그 사이 낀 교황청은 사실상 황제 손아귀에 들어가는 셈 - 실제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또 벨프가의 오토 4세에게 황제의 관을 씌워줘 프리드리히 2세의 즉위를 의도적으로 막은 것도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였다고 할 수 있죠. 이 과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전 포스트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http://blog.naver.com/jjy0501/100146236592      참조)   

 인노켄티우스 3세는 프리드리히 2세가 어린 시절 첸시오 (Cencio) 를 비롯한 성직자들을 교육담당으로 파견합니다. 하지만 첸시오는 시오노 나나미가 말한 것 처럼 단순한 보육 교사 이상의 중요 인물이었는데  (3권 342 페이지) 바로 나중에 교황 호노리오 3세가 된 인물이 첸시오이기 때문이죠. 




 호노리오 3세와 프리드리히 2세는 본래 사제지간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프리드리히 2세가 약속을 뒤집기를 밥먹듯이 하고 독일과 남이탈리아에서 제국을 재건하는데도 호노리오 3세는 아주 적극적으로 이를 저지하지도 않았고 전쟁을 불사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죠. 



 교황과 황제에 관계에 대해서는 부족하나마 십자군 전쟁사에서 여러차례 언급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4. 쿠투즈에 대해서 


 맘루크 조의 술탄 쿠투즈 (Qutuz) 는 재위 기간은 짧지만 아인 잘루트 전투라는 역사적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중요 인물입니다. 사실 작전 자체는 바이바르스가 수립한 것이었다곤 해도 이를 채택하고 실제 결정적인 순간에 병력을 이끌고 선전했던 인물은 쿠투즈입니다. 또 몽골과 전쟁을 결의한 것도 쿠투즈였죠. 


 그런데 십자군 이야기에서는 쿠투즈가 한번도 언급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냥 마치 바이바르스가 모든 것을 다한 것 처럼 나오는데 쿠투즈 입장에서는 꽤 억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쿠투즈에 대해서는  http://en.wikipedia.org/wiki/Qutuz  이나 이전 포스트 http://blog.naver.com/jjy0501/100159449882  를 참조) 



 5. 총평


 주로는 문제가 될만한 부분들을 주로 지적했기 때문에 마치 이렇게 쓰면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는 못 읽을 책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진 않습니다. 다만 사실 위주의 전개보다는 이런 저런 주관적 의견을 쓰거나 혹은 뭔가 이런 저런 내용들을 생략한 채 내용을 써나가는게 단점이라면 단점입니다. 오히려 오래전에 나왔지만 W.B. 바틀렛의 십자군 전쟁 (GOD WILLS IT !) 이 중간에 생략되는 내용이 없이 서술한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은 다소 냉소적인 측면에서 인간군상을 바라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십자군 이야기는 주요 십자군 사이의 마이너 십자군에 대한 내용은 모두 생략되다 시피 한데다 1160 년대의 이집트 침공 내용도 완전히 생략되다 시피했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입니다. 또 잘못된 기술도 보이는데 사실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저도 십자군 전쟁사를 쓰면서 느끼는 거지만 이렇게 긴 내용을 100% 정확하게 문헌을 찾아보고 기술한다는 것은 힘에 부치는 일일 뿐 아니라 사료의 정확성이 의심되는 부분들이 적지 않아 어떤 것을 채택하는 것이 좋을지 많이 곤란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 스페인 내전에 대한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저는 앤터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 (The Battle for Spain) 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비잔티움 제국에 대해서는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비잔티움 연대기를 추천합니다. 그런데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 한 권만 추천해 달라면 한권만으로는 좋은 책이 없다고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국내에 나와 있는 책 중에서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책은 현재 없습니다. 이 점은 제가 쓰고 있는 십자군 전쟁사도 마찬가지여서 여러 부실한 점이 스스로도 눈에 보입니다. 


 따라서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려주진 않지만 적당히 읽어볼 책 중에 굳이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배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내용 모두가 정확하진 않다는 건 염두에 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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