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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사 - 십자군 전쟁의 총평, 그리고 유산들 (4)






 4. 십자군 운동이 교황권에 미친 영향


 흔히 십자군 운동을 통해 교황권이 강화되었다가 그 실패로 인해 교황권이 추락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본래 자체적인 무력이 없었던 교황으로써는 십자군의 존재가 이 약점을 부분적으로도 보완해 줄 수 있는 대비책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초창기의 성지 회복을 위한 십자군에서 13 세기에는 교황권의 적 (대표적으로 알비주아 십자군에서 처럼 이단 척결) 에 대한 십자군들이 다수 조직되기에 이른다. 


 나중에는 십자군을 너무 남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심지어 십자군은 이교도와의 전쟁 뿐 아니라 같은 기독교도와의 전쟁에서도 종종 등장했다. 자체 무력은 없는데 잦은 분쟁에 시달렸던 당시의 교황청에게는 십자군이 꽤 도움이 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반면 13 세기 후반에는 성지 회복을 위한 십자군은 점차로 축소되는 양상을 보인다. 


 십자군 운동 자체는 분명 교황의 노력이 없었다면 처음에 시작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교황권이 강화되었기에 십자군 운동이 가능했으며 더 나아가 십자군 운동을 통해 교황권이 더 강화되었다. 


 하지만 이미 본문에서 여러 차례 기술하였듯이 역사의 궤적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교황권의 승리로 흔히 묘사되는 카노사의 굴욕 이후에도 황제들은 대립 교황을 세워 현재의 교황을 교체하려고 하거나 혹은 이탈리아 원정을 통해 교황을 굴복시키려 했다. 그리고 역대 십자군들도 그렇게 간단하게 소집되거나 교황의 뜻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설명한 대로다. 교황의 권위는 무시할 수 없었지만 십자군 마저도 그 명령에 고분고분 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교황권은 황제의 존재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을 받았는데 심지어는 황제의 자리가 공석이 된 대공위 시대의 혼란기에도 이탈리아로 들어온 프랑스 세력에 의해 교황권은 적지 않은 침해를 받았고 (이 부분 역시 본문에서 설명한 바 있다) 결국은 아비뇽 유수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된다. 


 성지 회복을 위한 십자군이라는 대의 명분으로 군대를 소집한 권리는 분명히 교황권 확립에 적지 않은 플러스 요소였다. 그러나 이후 십자군 중 상당수가 군사적 재앙으로 끝나면서 이 무모한 도박에 참여하려는 사람이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교황의 권위도 점차 먹혀들지 않게 되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성지 회복을 위한 십자군의 실패로 교황권에 적지 않은 마이너스 요소가 된 것은 사실일 것이다. 


 사실 십자군을 요청하는 교황의 선언에 더 이상 유럽인들이 반응하지 않게 된 것도 십자군의 몰락 요인 중 하나였다. 당대인들은 죽은 후 천국에 대한 보장은 받고 싶어 했지만 (십자군에 참여하면 주어지는 은사였다) 그렇다고 십자군에 참가해서 빨리 죽고 싶지는 않아했기 때문이다. 연이은 실패를 본 당대 유럽인들은 성지 회복을 위한 십자군에 매우 소극적으로 변했고 이런 시대적 변화에도 몇몇 교황은 계속 십자군을 주창했는데 오히려 이것은 더 이상 교황의 권위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 만을 보여주었다. 



 5. 십자군 운동이 왕권에 미친 영향


 십자군의 실패와 아비뇽 유수, 그리고 십자군 원정의 결과로 촉진된 상업의 부흥과 유럽 문화의 발전은 분명히 중세 봉건 국가에서 근대적인 형태의 국가로 변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사실 십자군 운동은 실패를 이야기 하기도 전에 프랑스 왕권 확립에 도움을 준 사례가 있다. 


 첫번째로 의도치 않은 결과이긴 했지만 사자심왕 리처드 1세가 무리하게 십자군 원정을 수행한 후 귀환중 독일에 포로로 잡히면서 막대한 몸값을 주고 풀려난 것이 당시 플랜태저넷 왕조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사실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지녔던 리처드 1세가 결국 실패로 끝날 3 차 십자군에 깊이 관여하는 대신 적당한 선에서 물러났다면 자신의 왕국에 그렇게 큰 부담을 지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면 리처드 1세의 칼이 자신이 아니라 이교도를 향하게 된 것은 프랑스의 필리프 2세 (필립 2세) 에게는 아주 다행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후 무능한 동생 존이 왕위에 오르는 행운까지 겹쳐 필리프 2세는 많은 영토를 회득하고 카페 왕조의 힘을 강화시키는데 성공했다. 


 두번째는 성지 회복을 위한 십자군을 아니지만 이단 척결을 위한 알비주아 십자군이 남프랑스에 대한 프랑스 왕실의 힘을 강화시키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이 십자군의 결과로 결국 남부의 강력한 백작령이던 툴루즈는 프랑스 왕령으로 귀속되었다. 


 다만 십자군 운동 자체는 왕권 강화와 근대 국가 수립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려웠따. 그보다는 그 간접적인 결과로써 교황권의 약화, 앞선 동방 문화의 수입, 상업의 발달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결과적으로 봉건제를 점차 해체시키는 방향으로 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14 세기 이후 100 년 전쟁이나 페스트의 창궐, 신항로의 발견 등 여러가지 다른 이유가 겹치면서 봉건제는 해체되고 절대 왕정이 준비되었던 것이다. 


 십자군 운동 자체가 왕권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았지만 결국 그 방향성은 왕권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1차 십자군은 국왕의 힘없이도 진행되었지만 말기에 진행된 십자군들은 모두 군주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점차 막대한 병력을 동원하는 일 자체가 국왕이 아니면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6. 십자군 원정이 종교 및 인종적 불관용성에 미친 영향


 기본적으로 십자군 원정은 성지를 사악한 이교도의 손에서 해방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유럽 사회가 점차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에 대해서 관용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변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아마 십자군 전쟁이 후세에 미친 가장 나쁜 영향으로는 많은 이들이 종교간 갈등을 지적할 것이다.  


 이미 1 차 십자군에서도 언급했듯이 유태인들에 대한 탄압과 학살은 당시의 도덕적인 기준에 비추어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했다. 특히 라이닝겐의 에미코는 이 부분에서 유태인 탄압의 유명한 사례로 남게되었다. 그들은 저 멀리 있는 이교도를 척살하는 대신 좀 더 편리하게 자신의 고장에 있는 유태인들을 학살하고 그 재산을 취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 때문에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유대인을 학살하는 십자군들 - 유대인 특유의 모자로 이들이 유대인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1250년 프랑스 성경에 실린 삽화로 당시 중세시대에 유대인 학살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This image (or other media file) is in the public domain because its copyright has expired.)


 포그룸 (Pogrom) 은 유태인에 대한 폭력을 의미하는 단어로 주로는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유래한 단어 (이 사건이 일어날 당시에는 동유럽에 유태인이 많았다) 이지만 넓게는 유태인에 대한 폭력 전체를 이야기 하기도 한다. 사실 유태인은 경멸받던 존재였는데 특히 온 서유럽이 이교도와 싸우기로 결정할 무렵에는 더 증오받는 존재로 변했다. 후세에 포그룸이라고 불릴만한 유태인에 대한 폭력과 학살은 이 무렵 서유럽에서 더 성행했다.  


 당시를 기준으로 이들이 유럽인들에게 그렇게 증오를 받을 만한 일을 했는냐면 그건 아니었다. 상당수 유태인들은 너무 빈곤해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줄수도 없었다. 다만 일부는 상업으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특히 이들이 성공을 거둔 부분은 본래 기독교도들에게 금지된 고리 대금업이었는데 이로인해 탐욕스러운 유태인의 이미지가 더 커지고 더욱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더 만만한 약탈의 대상이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모든 유태인을 추방하므로써 유태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사실 히틀러 이전에 중세 시대에도 있었다.  1290 년 영국의 에드워드 1세 시절에는 모든 유태인들이 영국을 나가야 한다는 칙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1655 년까지 영국에는 유태인에 대한 공식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숨어지내는 유태인들은 존재했지만.  


 하지만 십자군이 종교적 불관용성에서 후세에 미친 영향은 유대교 보다는 이슬람 - 기독교간 갈등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유대교는 십자군 원정이 없었어도 증오와 탄압의 대상이었지만 이슬람교는 특히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악한 이교도라는 인식이 유럽인들 사이에 강조되었다. 


 전쟁을 벌이게 되면 아무튼 간에 적들에 대해서 좋게 묘사를 할수는 없는 법이다. 전쟁 중에 벌어진 선동은 대부분 사악한 적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내용이고 이 과정에서 온갖 과장과 날조, 흑색선전이 난무하게 마련이다. 특히 대부분 자신이 살던 고장을 벗어나기 힘들었던 중세시대에 이슬람교도를 실제 보지도 못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선동은 아주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경로를 통한 정보를 지금처럼 얻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때때로 십자군이 무슬림들에 대한 잔혹행위를 했던 이유는 이와 같은 선전과 선동에 의해 사악한 이교도에 대한 선입견이 크게 작용한 탓도 있다. 특히 중세 시대에 존재했던 탁발 수도승들은 이런 '사악한 이교도' 에 대한 선입견을 널리 퍼트리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슬람교도 역시 기독교도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가질 수는 없었다. 당대의 이슬람 연대기 기록에 의하면 이 불경한 무리들은 야만적이고 무도하며 신의없는 인간들로 그려지는데 가끔씩은 식인종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는 물론 1 차 십자군의 마라트 알 누만 사건 때문이었을 것이다) 


 십자군 운동 이전에 이슬람 교와 기독교가 반드시 사이좋게 지낸 것은 아니었지만 이 운동 이후 범 유럽적으로 사악한 이교도에 대한 편견이 더 커진 것은 사실이었다. 더구나 현대에 이르기 전까지는 유럽에서도 십자군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이슬람 권에서는 특히 19세기 유럽 열강에 의한 식민지화가 진행되면서 과거의 불편했던 기억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십자군은 이슬람 문화에서는 의심할 여지 없는 침략자였는데 이는 19세기 식민화 과정에서 다시 오버랩이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과거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살라딘이 중동에서 영웅으로 떠오른 것은 서구와 맞선 이슬람의 영웅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그 전까지는 쿠르드족이라는 소수 민족 출신의 영웅으로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으나 이제 아랍권 여기 저기에서 그를 영웅시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현재의 종교적 갈등과 불관용성을 전적으로 십자군 때문이라고 말할 순 없어도 최소한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전쟁은 이슬람 교도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의 근원에 자리잡고 있다. 다른 종교에 대한 편견과 증오를 증폭시키는데 종교를 기반으로 한 전쟁 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 더구나 오랜 세월 갈등 관계에 있으면서 서로 교류는 매우 제한된 역사가 이후 유럽 - 이슬람 문화권 역사에 계속되기 때문에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 갈등은 매우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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